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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차 행진(24-2) 한결아트홀에서 간다 가오리 선생, "후쿠시마의 기도" 감동적인 강담 공연 열어(고리1호기 폐쇄!) 본문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 소식

24차 행진(24-2) 한결아트홀에서 간다 가오리 선생, "후쿠시마의 기도" 감동적인 강담 공연 열어(고리1호기 폐쇄!)

창아 2015.04.24 13:18

사진: 4월 18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에서 24차 시민행진 한일교류문화마당의 하나로  NPO법인 후쿠시마지원사람과문화네트워크 간다 가오리 이사장이 '후쿠시마의 기도'라는 강담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해창

 

한일문화교류를 주제로 한 24차 시민행진은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에 한일교류 문화한마당을 펼쳤습니다. 일본에서 온 24명의 방문단들과 함께 갑상선암 소송 관련 간담회 및 문화공연 시간을 갖고 상호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이날 당초 계획보다 시민행진이 한결아트홀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후쿠시마의 기도’ 강담 공연에 앞서 ‘갑상선암 공동소송인단 대표 변호사’인 변영철 변호사님으로부터 갑상선암 공동소송의 경과를 들었습니다.

 

 

변영철 변호사님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갑상선암소송은 현재 1심 재판부가 한국수력원자력측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고, 부산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입니다. 지난 2012년 7월 균도 가족 3명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 한수원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최초입니다. 그해 9월 서울대 의학연구소의 역학조사 결과 언론에 발표됐는데 원전 반경 5km 이내 거주자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2.5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로부터 감정 회신이 도착했는데 갑상선암과 원전에서 배출된 방사성 물질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판결 선고에서는 균도 어머니만 승소했고 균도 아버지와 균도는 패소했습니다. 현재 쌍방 항소하여 부산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소송이 계속중입니다. 원전 주민 갑상선암 발병자 1차 공동소송은 지난해 12월에 298명이 1차로 제기했고, 지난 2월에는 247명이 2차 소송을 제기해 현재 갑상선암 발병자 총 545명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1심 소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들은 ‘내부 피폭’에 관한 유럽방사선위기위원회(ECRR)의 2011년 보고서를 번역하고 있으며, 이후 ECRR 과학위원장 크리스 버스비 박사에게 법정 증언을 부탁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후에 일정이 있어 변 변호사님께 충분한 시간을 드리지 못해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았습니다만 모두들 큰 박수를 변 변호사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이어서 이날 한일문화행사의 핵심으로 NPO법인 후쿠시마지원사람과문화네트워크 간다 가오리 이사장님의 강담 공연 ‘후쿠시마의 기도’가 시작됐습니다. 강담(講談)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공연의 형태인데 만담같기도 하고 동화구연같기도 하고 웅변같기도 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강담사(講談師)인 간다 가오리 선생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출신으로 현재 도쿄 인근 사이타마시에 살고 있습니다. 1980년 강담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종래 전통적인 강담을 새롭게 해석해 재즈강담이나 1인연극(一人芝居)의 요소를 넣은 독자적인 강담을 발표해 강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분입니다. 특히 원전사고의 사고진화활동에 관한 부부애를 테마로 한 ‘체르노빌의 기도’와 히로시마의 원폭을 다룬 ‘맨발의 겐’ 그리고 후쿠시마원전사고를 다룬 ‘후쿠시마의 기도’ 등의 이야기는 일본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일본에서 이름있는 예술인입니다.

 

그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홀로 무대에 올라 담담하게,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격정적으로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변해버린 한 가족의 생활상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밖에서 모래 장난을 치며 놀고 싶어 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말리는 엄마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면서 어른이 낸 사고로 인해 아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무대 뒤편에는 PPT로 간다 가오리 선생이 말하는 강담의 내용이 한 장 한 장씩 우리말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김해창 경성대 교수가 조명기사 옆에 앉아 강담에 맞춰 번역된 강담 내용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역사(歴란 사람들의 경험의 계승입니다. 그것은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해져서 역사가 됩니다. 후쿠시마(福島)에서 일어난 사건은 3"E11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원인이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거슬로 올라가야 좋은지, 끝없는 역사를 향한 눈길. 사람들이 경험한 방대한 스토리로부터 하나를 집어내서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사건은 진행 중이며,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백년이나 걸릴 지도 모릅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스토리가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서 이 사건을 기록해 가는 최초의 시도입니다. 평생을 바쳐서 스토리를 이어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 크나큰 스토리, 사람들이 경험한 이야기, 결말(結末)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가장 유대관계가 깊은 어머니와 딸의 스토리입니다.”

 

“「엄마, 이 꽃을 만져도 되요?」어렴풋이 지난 2년 반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던 저는 딸의 질문에 갑자기 제정신이 들어 「괜찮아, 꽃만이 아니라 모래밭도 흙 놀이도 뭐든지 해도 좋아요」 여기에 오기 전, 딸에게는 자주 화를 냈었습니다. 아이들은 원래 비에 젖는 것을 즐기고, 낙엽을 밟는 촉감을 즐기고, 흙이 묻고, 꽃잎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나무타기에 도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을 모두 금지(禁止)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매일 딸에게 「나뭇 잎을 줍지 말아」라고 말하면서,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생각하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를 주변의 모자(母子)가 모두 하고 있었다면 마음이 많이 편했을 것입니다. 몇 번이나 말해도 나뭇잎을 만져버리는 딸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몸 속에 독이 들어갔어. 병이 나서 입원하면 엄마와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쟎아」라고 말하는 등, 심하게 야단을 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부(政府)가 하는 「바로 지금 건강에는 영향이 없다」는 말을 믿고 있어서, 어머니들은 자기 아이를 그전과 똑같이 놀게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저만이 「나뭇 잎은 안 돼, 모래밭도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신경이 예민한 엄마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딸은 친구들이 다 그전처럼 놀고 있다 보니 결국은 친구를 따라서 똑같이 놀아버립니다.”

 

“야단을 친 뒤, 잘 못한 것은 우리들 어른이고, 어린이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는 어찌 그런 지독한 말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제정신을 되찾아, 울면서 딸에게 사과한 적도 있었습니다. 딸에게는 매우 혼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3.11 이전 가사이 마유미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아니 남보다 다소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거짓」의 생활이었음을 3.11 이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마유미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출생으로, 부모의 말을 잘 듣고, 학교에서도 규칙을 잘 지켜, 동네 우수학교에서 희망대로 도쿄의 대학을 나와, 큰 광고 회사에 취직. 거기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여, 임신을 계기로 전업주부가 된, 세상의 가치관을 의심할 일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主婦)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중략)

 

 

“때는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46분, 산리쿠앞바다에서 거대한 지진이 발생, 운전중인 후쿠시마(福島)제1원전 1호부터 3호기가 긴급정지. 지진발생과 동시에 모든 외부전원을 상실. 7시50분.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官房長官)이 원자력긴급사태를 선언. 정부는 제1원전의 반경(半径 3킬로 내 주민에게 피난, 10킬로 안에는 실내대피 지시를 발표. 다음날 3월 12일, 오전 5시 44분, 반경 10킬로 내 주민에 대해서도 실내대피가 피난 지시로 바뀐다. 이로 인해, 구조를 기다리는 많은 쓰나미피해자를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아무도 와 주지 않는 걸까? 아니야 꼭 반드시 구조하러 올거야」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며 굶주림과 싸우고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모습인가? 아니면 폭발 후에 내린 흰 가루인가?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무엇인가? 폭발 소리일까? 그렇지 않으면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일까? …”

 

“한달 후, 경찰, 자위대, 소방소와 수색대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시신은 일절 유족 곁에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수 많은 시신은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되어, 화장(火葬)하면 연기로 방사성물질을 확산하고, 토장(土葬)하면 흙이나 주변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고, 검시(検 작업 중에도 피폭된다고 해서 수용마저 거절 당해, 들판에 버려진 채 썩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가야마씨는 그 날 이후 술을 마시는 양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소방단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행방불명의 가족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찾아낼 수 있었는데…. 원전사고만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는지….

 

(중략)

 

“그러나 저는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때로는 마음이 흐트러지고, 심하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의 생활을 지켜나갑니다. 지금, 자기자신이 강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식과 분노가 저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후쿠시마(福島)는 저 자신이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4년 지나도 후쿠시마(福島)는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매일 저임금(低賃金)으로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는 5000명이나 되는 원전 작업원들. 멍하니 풍요로운 바다를 계속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어민들. 산나물이나 버섯, 자랑하는 야채를 손자에게 먹이지 못하게 된 농가의 노인들. 버림 받아 들판을 방황하고 있었던 소들은 폐기물로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미 방사능의 방자도 말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 전인 후쿠시마시(福島市)와 구리야마(郡山市)의 사람들. 학교 친구가 급성백혈병으로 죽자 다시 마스크를 하기 시작한 중학생들. 장래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인가? 남몰래 고민하는 여학생들. 우리들은 이 나라에서 거의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저 사카이 마유미는 단단히 각오하고 후쿠시마(福島)와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말한 「싸움은 밝고 즐겁게 끈질기게」「기가 막혀도 포기하지 않고」 어린이의 미래와 후쿠시마(福島)를 되찾을 때까지.”

 

“「후쿠시마의 기도-어느 모자(母子)의 피난 이야기―」이것으로 완결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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