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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의 희망 만들기

24차 행진(24-3) 갑상선암주민소송 1심 승소 균도아빠 이진섭씨, "고향 떠나지 않고 끝까지 원전과 싸울 것"(고리1호기 폐쇄!) 본문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 소식

24차 행진(24-3) 갑상선암주민소송 1심 승소 균도아빠 이진섭씨, "고향 떠나지 않고 끝까지 원전과 싸울 것"(고리1호기 폐쇄!)

창아 2015.04.24 17:40

사진: 4월 18일 오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 '한일문화교류 한마당'에서 균도아빠 이진섭씨가 구자상 부산녹색당 운영위원장과 함께 갑상선암주민소송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 왼쪽끝은 통역자인 강내영씨. @김해창

 

24차 시민행진의 한일문화마당에서 간다 가오리 NPO법인 후쿠시마지원사람과문화네트워크 이사장의 ‘후쿠시마의 기도’ 강담 공연을 마친 뒤 한국측에서 간단한 노래공연을 준비했습니다.

 

평소 음악을 사랑하고 기타 연주에 프로급 실력을 갖춘 박창희 국제신문 대기자께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노래는 닐 영(Neal Young)의 ‘하트 오프 골드(Heart of Gold)'. 베트남 반전운동의 불을 당기며 록음악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저항운동의 표본이 되었던 곡이기도 하지요.

 

‘I wanna live I wanna give/ I've been a miner for a heart of gold/ It's these expression‍s I never give/ that keep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어/ 난 순수한 마음을 찾아 헤맸지/ 내가 순수한 마음을 찾는 걸/ 멈추지 못하는 건 내가 절대/ 입밖에 내지 않았던 이 말 때문이야)’

And I'm getting old/ Keep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And I'm getting old(나이는 들어 가는데/ 난 계속 순수한 마음을 찾고 있어/ 나이는 들어 가는데...)

I've been to Hollywood/ I've been to Redwood/ I'd cross the ocean for a heart of gold(헐리우드에도 가봤고/ 레드우드에도 가봤어/ 순수한 마음을 찾아 바다를 건너기도 했지)

I've been in my mind/ It's such a fine line/ that keeps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마음속으로 생각해 왔었어/ 참 근사한 말이라고 말야/ 그 때문에 난 멈추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찾고 있는거야)

And I'm getting old/ Keeps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And I'm getting old(

나이는 들어 가지만/ 난 계속 순수한 마음을 찾고 있어/나이는 들어 가는데...)

Keep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You keep me searching/ And I'm growing old/ Keep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I've been a miner for a heart of gold(순수한 마음을 찾게 하고 있어/ 당신 때문에 난 멈추지 않아/ 나이는 들어 가는데/ 계속해서 순수한 마음을 찾고 있어/ 난 순수한 마음을 찾아 헤매고 있어)

 

이어서 김해창 경성대 교수가 무대에 올라가 박창의 대기자의 기타 반주에 맞춰 김민기의 ‘강변에서’를 불렀고, 끝으로 박창희 대기자가 송창식의 노래 ‘왜불러’를 불렀다.

 

 

이어서 ‘균도아빠’ 이진섭샘과 부산 녹색당 구자상 운영위원장님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진섭샘은 갑상샘암 공동소송의 주역입니다. 이 두분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진섭=제 자신은 물론 장모님, 아내, 아들 등 가족이 모두 암 등 질병을 앓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갑상선암주민소송을 내 1차 승소한 균도아빠 이진섭입니다.

 

구자상=우선 일본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국을 방문해주신데 대해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후쿠시마참사는 우리 인류에 새로운 문명 전환을 요구했고 이러한 것이 저희 부산녹색당이 만들어진 계기도 됐습니다. 균도아빠 이진섭선생이 국민적 공감을 갖고 환경권을 소송을 통해 밝혀 보자고 해서 제기한 갑상선암소송에서 1심 승소를 한 것은 세계 최초로 인정이 된 것이며, 지금 전국적으로 집단소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과를 이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진섭=소송은 2012년 7월에 시작했습니다. 판결은 2014년 10월에 났지요. 원전노동자는 있었지만 주민소송은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직장암과 발달장애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없어 100% 패소했습니다. 인정받은 것은 갑상선암만인데 원전 인근에 사는 6만명 중 260명이 이에 해당하고, 서류를 못챙긴 600명을 포함하면 인구의 1%가 갑상선암환자라고 하는 것이 믿깁니까? 전국적으로 530명이 지금은 공동소송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첫소송 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 소송은 지금 옆에 계시는 구자상 선생님이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저를 응원한 사람은 부산녹색당, 구자상 위원장, 변영철 변호사뿐이었습니다.

 

구자상=현재 환경소송서 중요한 이론이 ‘개연성(蓋然性)’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미나마타병 소송의 경우 개연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에서 나온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해를 유발한 공장이 문제가 없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진섭=제가 최초로 시작한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환경운동가나 탈핵운동가는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아들이 있어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장애인운동가입니다. 처절함이 있어 싸워온 것입니다.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담당변호사도 진다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일본 NNA의 초대로 일본 전국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오사카, 후쿠이, 도쿄 등 6개 지역의 조직과 교류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고시마원전에 가보았습니다. 제가 일본사람과 다른 것은 ‘처절함’에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강했지요. 원전지역에서는 반핵운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 소송을 하고도 지역이 바뀌지 않아 제가 직접 지방선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원전 역사 35년에 지방의원으로 나와 원전이 안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원전 주변은 돈이 넘쳐납니다. 그리고는 안전하다는 말만 난무합니다. 저는 장애아를 키우고 있고 지금은 돈을 벌지 않습니다. 선거에서 4천만원을 날렸습니다. 원전소송에서 이긴다해도 돈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95% 소송비를 제가 내야 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지역민으로서 주민의 자존감때문입니다. 이를 법으로 만드려고 제가 전국 3000km를 도보순례했습니다. 장애아인 아들 손잡고 3000km를 걸었습니다. 정부기관앞에서 30일간 단식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소송이 가능했지요. 악착함, 간절함에서 시작했습니다.

 

구자상=국민소송은 정말 진지하게 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측은 끝까지 관계없다고 잡아뗄 것입니다. 앞으로 2,3심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진섭=한수원이 공공연히 애기하는 게 있습니다. 자기들은 안전성 문제가 없는데 후쿠시마원전사고후 오염수가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한데 일본 후쿠시마사고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수원은 이상하게 경영되고 있습니다. 뇌물이나 짝퉁부품비리 등으로 한수원 전 사장이 구속되거나 조사과정에 관련 직원이 자살하기도 하고 고리원전에서 발전소완전정전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은폐하는 사건도 생기고 해서 저는 이런 한수원이 미워서 소송을 했습니다.

 

이번 소송에는 국제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와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1심 승소후 일본에서 또한 초청을 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절 불러주는 곳이 잘 없어요. 저는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9시 뉴스 앵커가 하는 말도 있어요. ‘균도아빠 소송은 한국에 원전을 계속 지을 수 있을까하는 큰 기로에 있는 싸움’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승소한다면 원전 반경 30km 이내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원전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나 일s에는 그런 곳은 없습니다. 앞으로 탈핵을 위해 열심히 싸울 것입니다. 이 소송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최초의 사례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바깥에 책이 있는데 ‘아들 균도’입니다. 발달장애아 균도와 갑상선암주민소송에 대해 적어놓은 기록입니다. 일본 NAA에서 판권을 사갈 것 같습니다. 혹 일본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갑상선암주민소송은 정말 제 혼자한 투쟁이었습니다. 제가 승소한 날 재판장에는 균도와 나 두명뿐이었습니다. 반핵단체도 자신들이 소송의 주체가 아니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아쉽습니다.

 

구자상=한국이나 일본이나 찬핵의 카르텔이 강한 나라라 하겠습니다. 한국의 찬핵세력은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한국에서, 특히 부산에서는 지금 고리1호기 폐쇄운동이 범시민운동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진섭=제가 고리 주변에 살고 있지만 재미있는 일은 한국은 일본과 달리 대륙인데 해수담수화시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에선 오키나와나 나가사키 정도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리 10km이내에 해수담수화공장이 있어요. 후쿠시마원전의 온배수가 떠돌아다닌다고 하면서 고리본부측은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민들도 모릅니다. 해류도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후쿠시마오염수도 한국으로 돌아올 때라고 합니다. 부산은 낙동강물이 있습니다. 낙동강물 55%만 정수장으로 돌리고 나머지는 비가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해수담수화를 해서 주민들에게 공급하겠다니 이해가 안갑니다. 이것이 한국입니다. 앞으로 일본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와 균도는 오는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미국에 강연하러 갑니다.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지 갑니다. 단 조건은 우리 아들 균도와 저를 함께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없었다면 이 운동은 안 했을 겁니다. 장애아인 아들이 선생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열심히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저는 주로 장애인인권운동을 주로 하고 강연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탈핵운동가로 점이 찍혀 그런 강연이 안 들어와요. 지금은 줄돈도 없어 돈을 빌려쓰고 있어요. 그래도 조금 좋은 점은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발달장애인문제를 알려냈다는 겁니다. 제가 이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들 균도때문입니다. 우리 균도가 앞으로 저보다 30년은 더 살아야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또하나 소송을 하고 싶습니다. 그건 후쿠시마원전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상대로 말입니다. 후쿠시마사고 오염으로 한국 국민에 피해가 없는가 하는 것을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없어요. 일본에 공짜 변호사 좀 소개해주세요.

 

이어서 관람석의 일본인들이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진섭샘이 답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일본은 원고가 입증책임이 강한데 일본은 정말 그럴까요, 한국은 과연 기본을 믿을 수 있을까요? 환경소송에서도 모든 법이 일본을 따라하게 돼 있어 대부분이 앞서 말씀드린 개연성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헌법에도 들어가 있는데 그것도 일본서 가져온 것이지요. 환경소송은 개연성이론이 인정받고 있는 추세이며 그것을 보고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일본에서 찾아봐주세요.”

 

“제가 소송에서 인정받은 것은 1500만원인데 그걸 상대로 우리나라 1위 로펌회사와 싸우고 있다. 지금 변호사는 제소송을 무료변론해주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보수금을 받습니다. 성공보수금은 10% 지급인데 600명이라면 150만원만 해도 15억원이 되지요. 저는 한국 방송에 다큐에만 20번 이상 나와 균도가 유명해져 언론 관심이 있었습니다. ‘균도와 세상걷기-법원으로 가다’는 사회적 관심 유발을 위해 저와 균도를 넣은 것입니다. 갑상선암소송투쟁을 위해 장애아들을 넣은 것이지요. 많이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원전노동자피폭자 문제도 심각한데... 노동재해문제 피폭노동자 재판을 갑상선암환자에 집중한 것은 싸움을 좁게 하기 위해 포커스를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암은 뺏습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갑상선암이었다. 나머지 소송은 이제 일본에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용희 숨쉬는 동천 공동대표께서 이진섭샘에게 질문을 하나했습니다.

 

“ 강담 공연에서 마유미가 후쿠시마을 떠났는데 이진섭씨는 후쿠시마에 가본적이 있습니까? 기장군의 해수담수화와 관련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할 용의는 없습니까?”

 

이에 이진섭샘이 말했습니다.

 

“후쿠시마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후쿠시마쪽에선 초청해준 적이 없어 못갔습니다. 저는 해수담수화가 아니라 원전이 폭발해도 지금 있는 우리집에서 살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았으면 제가 소송도 안 했을 것이고 선거도 안 나갔을 겁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제말에 책임을 집니다. 해수담소화도 만약에 한다고 하면 저는 마시면서 싸울 것입니다. 어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만일 후쿠시마에 살았다면 그곳에 살면서 싸웠을 것입니다. 고향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진섭샘과 구자상 위원장님의 이야기가 끝난 뒤 간다 가오리 이사장께서 후쿠시마원전 지역주민들에게 이날 이진섭 선생의 말씀은 큰 힘이 될 것이며 승리할 것을 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극장안에서 즉석 모금한 액수를 이진섭샘에게 전달하며 격려를 했습니다. 그리고 균도가 자신의 주제가라며 노래를 한소절 불렀습니다. “모든 걱정 떨쳐버려요. 욕심을 버리면 별이 될 수 있어~”

 

이날 관람석에선 멀리 서울에서 이준택 건국대 교수께서 와 계셨습니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물리학 전공자로 최근 전국적으로 사례없이 ‘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송태원님은 지난해 자신의 지인이 원전 주변에서 잠수작업을 하다 사망했음에도 한수원이 무책임한 사실을 가슴아프게 이야기했습니다. 박기철 경성대 교수께서도 우리 시대가 열어서는 안 될 ‘원자력’이라는 판도라상자를 잘못 열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퀴리부인도 무조건 존경의 대상으로만 알 일이 아니라면서 원전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이날 한일 탈핵문화한마당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인근 해물탕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참가자 한분이 한국노래 ‘바위처럼’을 불러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한국측에선 박기철 경성대 교수께서 ‘딜라일라’ 노래를 ‘파워풀하게’ 불러 ‘엄청난’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 일본측에서 ‘젓가락 마술시범’을 보였다. 마치 김밥말이같이 대나무 젓가락의 발같은 것으로 노래에 맞춰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냈는데 다들 신기해 했습니다.

 

 

이번 일본인들의 한국 탈핵투어 방문은 지난해로 거슬러서 올라갑니다. 지난해 5월 ‘후쿠시마지원사람과네트워크’ 간다 가오리 이사장과 군지 마유미 사무국장 그리고 무나카타 요시야스씨가 무나카타씨의 저서 ‘후쿠시마가 본 체르노빌 26년째의 진실’의 출판기념회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간다 가오리 이사장 일행은 고리원전을 둘러보고서는 고리원전 반경 30㎞ 안에 해운대를 비롯해서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며 향후 후쿠시마사고의 교훈을 살려 양국이 시민단체 차원에서 탈원전 교류가 필요있다는 데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김해창 교수가 고리원전에 관한 소책자의 일본번역판 출판을 기념해 도쿄에서 일본 시민을 대상으로 ‘한국의 원전은 지금’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가졌고, 이때 일본인들에게 ‘부산지역 고리1호기 폐쇄 시민행진’ 참가를 위한 한국방문여행을 제안했고, 후쿠시마지원사람과네트워크 차원에서 24명을 모아 지난 17일~20일 3박4일 일정으로 부산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들 방문단은 19일에는 고리1호기 방문해 고리원전 홍보관과 지역주민 간담회를 갖고, 밀양으로 이동해 밀양765kV송전탑대책위 어르신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이어서 계명문화대학 오카다 교수의 초청으로 대구지역 청년네트워크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졌으며, 20일에는 보수동책방골목~국제시장~감천문화마을~비석마을~남포동 BIFF광장을 둘러본 뒤 ‘18번 완당집’에 점심식사하고 이날 오후 항공편으로 일본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방명록에는 일본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겨 놓았습니다.

 

‘탈원전은 많은 사람들과 연대해서! 요코다(幸田)’

 

‘원전피해에는 국경 같은 것 없다. 기하라(木原)’

 

‘김해창 선생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리원전1호기의 폐쇄를 호소하는 시민행진에 참가했습니다. 시민들이 유인물을 받아들고 귀를 기울여주어 일본의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어서인지 멋진 시위였습니다. 나카무라 야스코(中村泰子)’

 

‘이진섭씨에게. 승리 축하드립니다. 이 승리를 알고 ‘멋지다!’ ‘한국의 반원전의 승리는 진전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엄청난 투쟁을 해오신 걸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들이 일본의 원전반대의 투쟁을 진전시키는 것이 연대에 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5. 4.18 무라카미 리에코(村上理惠子)‘

 

‘원전추진파 세력에 대항해서 탈원전운동을 펴가는 어려움을 이진섭씨의 이야기 등을 통해 실감했습니다.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생각했습니다. 구라타 지에코(倉田智慧子). 2015.4.18’

‘끈질긴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도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수시설이 55%만 가동되고 있는데도 오염 가능성이 있는 해수를 담수화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정보,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 정보를 알게 됐기에 시민사회 안에서 정보수집력을 높여갈 필요를 실감했습니다. 2015.4.18 니에카와 교코(蟄川恭子)’

 

‘일본과 한국이 손을 잡고 탈원전사회를 만들어갑시다. 국제연대라고 하는 멋진 말이 와닿았습니다. 함께 걸어갑시다. 2015.4.18. 후쿠타 다카시(福田敬)’

 

‘다음세대사람들을 위해서도 이 운동을 계속해가야 한다는 것. 응원합니다!! 2015.4.18 다케이시 데쓰(竹石哲)’

 

‘핵과 원전의 오염에 국경은 없다! 이웃나라 한국사람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함께 시민행진을 할 수 있었고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2015.4.18’

 

‘재연장저지에 함께 투쟁합시다! 2015년 4월 18일 야마모토 레이지(山本礼治)’

 

‘매우 유의미한 경험이 됐습니다. 관계자 여러분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히로시게 다카키(廣重隆樹). NPO후쿠시마지원’

 

‘방사능에는 국경이 없다. 반핵운동에 국경은 없다-가이 준지(甲斐淳二)’

 

‘핵과 원전은 있어선 안 된다. 한국의 여러분의 활동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나카타 유미코(宗像由美子)’

 

‘매우 충실한 부산여행이었습니다. 한일 시민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핵이 없는 세계를! 마음으로부터 감사함을 갖고. 도쿄 요코다 사쿠코(橫田朔子).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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