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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민주공원 원폭2세 김형률 10주기 추모제에서 “고리1호기 폐쇄!” 본문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 소식

<28-2> 민주공원 원폭2세 김형률 10주기 추모제에서 “고리1호기 폐쇄!”

창아 2015.05.31 10:22

 

2015년 5월 23일 부산민주공원에서 '김형률 10주기 추모제'를 마친 뒤 민주공원 동산에 김형률추모사업회 관계자들이 기념식수와 추모석 개막식을 가졌다. @김해창

 

2015년 5월 23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는 ‘김형률 10주기 추모제’가 거행됐습니다. 이날 소극장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고 김형률 선생의 대형 영정 사진과 함께 향 내음이 실내를 은은하게 채웠습니다. 고 김형률 선생 가족분들은 김형률추모사업회(02-735-5811) 관계자분들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멀리 일본에서 이날 행사를 위해 모였습니다. 그리고 전날인 22일 부산 해운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선 '김형률 서거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제 강제숙 김형률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김형률 10주기 추모제'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평화를 위한 묵념이 있었습니다.

 

 

 

김종세 민주공원 관장께서 여는 인사를 했습니다. “12년 전 김형률을 만났을 때 저는 민주공원 전시관련 담당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당당한 모습이었던 그는 핵이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이야기한 청년으로 기억합니다. 한 인간의 생명이 그토록 소중할진대 한 인간-우주라고 하는-이 그 아픈 곳을, 다시는 이런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부산역에서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에 참여해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의 10주기가 된 오늘 우리 부산은 핵발전소 폐쇄를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그가 이 장면을 봤다면 감회가 새로웠을 것입니다. 아픈 몸 제대로 알아주지도 못해 씁쓸해 했을 지도 모를 김형률님께서 오늘은 따뜻한 마음으로 늘 우리 곁에 가르치고, 우릴 믿어주고 함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저도 한사람으로 그의 뜻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 김형률 선생의 생전 영상과 함께 활동이 소개됐다. 김형률 선생은 2002년 커밍아웃을 통해 국내 원폭2세환우의 존재를 알리고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해 초대회장으로 원폭2세 환우에 대한 지원이 담긴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 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5년 5월 29일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자신의 병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역설하고 핵의 야만을 고발했으며 동시에 원폭2세 환우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주장한 반핵평화인권운동가였다.

추모의 말씀이 이어졌다.

 

한홍구 김형률추모사업회장께서는 “153센티, 37킬로그램의 몸으로 자신의 인간된 권리를 찾기 위해 만나는 사람에게 ‘도와주세요’ 편지 보낸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 10년이 됩니다. 피를 토하며 외치다 님이 떠났건만 아직도 특별법 제정이나 인권이 개선된 것 없이 광복 70년, 원폭 70년을 맞게 됐습니다. 한국에도 핵피해자가 있다는 사실, 청산 안된 것이 이제는 원전 주변 주민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핵피해를 입어선 안됩니다. 한반도에 핵발전 핵무기로 인한 핵피해가 양산돼선 안 될 것입니다. 약자는 보듬어 안고 기억해야 하고 그날이 올 때까지 그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락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 이흥만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추념사가 있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어둠이 빛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 빛이 됩시다”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고바야시 하츠에 일본인 피폭2세이자 일본 전국피폭자청년동맹 청년대책 국제부장이 ‘김형률 동지 10주기를 맞이하여’라는 제목으로 발언을 했습니다. “김형률 동지! 피폭2세의 유전적 영향을 열심히 호소하고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고발한 당신을 잃은 지 10년은 일본 피폭2세의 상실감의 치유보다 남겨진 자의 책무를 점점 더 강하게 자각하는 세월이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의 중대사고로 들끓던 수소폭발의 구름을 보고 ‘우리들과 같은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을 또다시 만들어버렸다’고 오열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그속에서 아베정권은 패전제국주의로서 핵보유할 수 없는 제약을 돌파하는 표적을 내포하는 전쟁체제의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들 일본의 피폭2세는 김형률 동지,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형제자매에게 진심으로 국제연대를 통해 아베가 추진하는 전쟁체제 구축과 정면에서 싸울 것을 결의합니다. 김형률 동지, 지켜봐주세요. 우리들을 살아가기 위해 아베를 타도하고 승리할 것입니다.”

 

이시다 노부미 교토피폭2세·3세회 운영위원께서 연대사를 했습니다. “고 김형률님의 어머님인 이곡지님과 만나 담소하면 친근감을 나타내시려고 일본어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일본어는 2개입니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와 ‘조~센, 카에레!(조선, 돌아가!)입니다. 모국어인 조선어를 빼앗긴 5세 소녀의 일상적인 기억에 남은 일본어입니다. 왜 5세 (...) 누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누구에게 들은 욕일까요? 저는 미력하나마 철저하지 않은 전후처리, 과거청산, 침략과 식민지지배의 실상 등을 분명히 하고 극복하기 위해 한일에서 풀뿌리운동으로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부디 김형률 부모님이신 김봉대님과 이곡지님, 건강하게 오래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오야기 준이치 코리아문고 공동대표께서 말씀했습니다. “10년 전 도쿄에서 형률씨를 만나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49재 때 와서 부모님께 언제가 형률씨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작년에 일본서 일본어로 된 책이 나왔고 올해는 한국어판 유고집(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을 줄판할 수 있어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 자신 형률씨의 사상,삶의 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오야기 대표는 번역가이자 시민운동가로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990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대에서 일본관련학과 객원교수로 있었고 현재 일본 센다이에서 코리아문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어 강주성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 공동대표께서 말했습니다. “저는 숨쉬기가 어려워요. 이해해주세요. (거친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그대로 들렸습니다.) 저 친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정말 저 친구가 기침을 하면서 힘들어 했겠다 생각했습니다. 호흡기 장애기준표에 따르면 형률은 1급 장애, 저는 3급 장애입니다. 정말 형률이가 죽을 힘을 다해 살았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형률이를 만났을 때 ‘너와 같은 환자를 찾아보라’고 했는데 형률은 무려 500명을 찾아내 환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반핵인권운동에 원폭피해자를 주인으로 세우고 함께 탈핵과 인권운동의 바통을 이어가도록 합시다.”

 

김형률 선생의 조카 김여진 양이 나와 말했습니다. “삼촌이 주신 곰인형, 동화책이 내겐 소중한 선물입니다. 삼촌의 꿈을 생각하며 삼촌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끝으로 김형률 선생 부친 김봉대님께서 유족대표로 인사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서울에서 형률이 10주기를 맞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로서 다 일을 못했습니다. 17.18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폐기처분됐습니다. 19대 국회에서 오는 6월에 다시 특별법 관련 움직임을 있습니다만 앞으로 최선을 다해 이뤄낼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 정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제기해 반드시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도록 할 것입니다. 아들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와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헌화와 분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민주공원 앞 마당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허경미 REDSTEP 대표가 살풀이를, 부산의 여성인디가수 이내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 김봉대님께서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의 방명록에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민주공원 아래편에 고 김형률 10주기 추모석 건립과 추모나무 심기로 추모제를 모두 마쳤습니다. 추모석에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 김형률 선생의 유지가 정상래 조각가의 굵은 글씨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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