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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의 희망 만들기

합천에서 함께 나눈 '탈핵으로 가는 길' 특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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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에서 함께 나눈 '탈핵으로 가는 길' 특강

창아 2016.08.10 09:23

2016년 8월 5일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김해창 교수가 '체르노빌에서 탈핵까지'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장성하

 

히로시마 원폭 71주년을 맞아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 2016년 8월 5일, ‘2016합천 비핵․평화대회 Hapcheon Anti-Nuclear&Peace Festival 2016’ 와 6일, 원폭희생 영령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이번 대회는 원폭투하 71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30년을 맞아 ‘원폭 71년, 체르노빌30년 같지만 다른 하루’라는 테마로 한국원폭피해자협회,(사)위드아시아가 공동 주최하고 합천평화의집이 주관하였으며 경남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후원하여 ‘비핵․평화 이야기한마당’, ‘비핵․평화 영화상영회’, ‘비핵․평화 난장’, ‘비핵․평화 터벌림 한마당’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비핵․평화 이야기한마당’에서는 ‘체르노빌에서 탈핵까지’라는 주제로 김해창 교수(경성대학교 환경공학과)와 허광무 박사(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의 발제가 진행되었습니다. ‘비핵․평화 난장’에서는 같지만 다른 하루를 살고 있는 피해자들과 일반 참가자들이 함께 평화 지문나무를 만들고, 핵 없고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사진으로 남기는 등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6일 오전 9시 30분부터 ‘한국원폭2세 환우회’의 주관으로 71주기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제 행사가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내 위령각에서 개최됐습니다. 합천이 대회장소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원폭 1세 피해자 2,501명 중 24%인 619명이 경남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64%인 397명이 합천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남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김해창 교수의 강연 내용을 담은 글 전문이다.

 

탈핵으로 가는 길

-체르노빌․후쿠시마원전사고 그리고 한국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 hckim@ks.ac.kr

 

 

1. 체르노빌원전사고 발생 그리고 30년 후 오늘

 

1) 체르노빌원전사고의 원인과 대응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 옛 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원전에서 강력한 폭발과 함께 방사능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지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는 총 4기의 원자로를 운용 중이었고, 2기의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었다. 이들 4기의 원자로는 모두 RBMK-1000형 원자로, 즉 흑연감속비등형경수로였다. 사고가 발생한 4호기는 1983년 운전을 시작한 지 불과 4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체르노빌원전사고는 원전 기술자들이 원자로를 4차례 시험가동하면서 안전절차를 위반해 일어난 인재이다.

이 시험가동이란 원전4호기에서는 주 전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원자로의 터빈이 관성에 의해 회전할 때, 그 회전 에너지가 원자로의 냉각펌프 등에 얼마나 오랫동안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원전 기술자들은 체로노빌4호기의 원자로 비상냉각장치, 비상 원자로 운전중지 장치, 동력규제장치 등을 잠그고 원자로를 7%의 동력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거의 모든 제어봉을 노심에서 끊었는데 노심의 연쇄반응이 통제 불가능 상태가 된 것이다. 몇 차례 폭발로 원자로의 강력한 철강·콘크리트 뚜껑이 날아가고, 흑연 원자로 노심의 화재로 대량의 방사성물질 대기로 퍼져나갔다. 화재가 진압되기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1986년 8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산하 국제핵안전자문그룹인 INSAG의 보고서는 사고 원인으로 체르노빌원전의 구조적 결함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사고 이전에, 체르노빌원전에서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원자로의 긴급정지가 1980년부터 사고 당시까지 총 71건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련 측에서는 이러한 결함과 사고를 감추고 폭발 직전까지 체르노빌원전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의 하나로 홍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체르노빌4호기 폭발 다음날인 4월 27일 프리퍄치 주민 3만여 명이 피난하기 시작했고 5월 4일 원자로 노심에서 새어나온 방사능과 방사열에 대한 견제장치를 작동시켰다. 5월 6일 소련은 사고경위를 세계 언론에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 해 말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 고농축 방사능 원자로 노심을 ‘매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고 현장 사망자는 30명이 넘었는데 그 중 2명은 폭발과 화재로, 29명은 방사능 노출로 목숨을 잃었고, 200여 명 이상이 심각한 방사능병에 걸렸다. 프리퍄치 인근 마을의 5만명을 포함한 13만5천명이 이 지역에서 피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 등에 의한 국제공동조사 결과, 이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9000명으로 평가됐다. 2000년 4월 26일 체르노빌원전사고 14주년 추도식에선 사고처리에 종사한 작업원 85만명 중 5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알렉세이 야브로코프 박사는 98만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8t 정도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 속으로 빠져나갔는데 이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한 방출양의 약 400배에 이른다고 국제원자력기구가 공표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으로 퍼져나갔고 서쪽으로는 프랑스·이탈리아까지 확산됐다. 그중에서도 벨라루스는 낙진으로 전 국토의 22퍼센트 가량이 방사능에 오염됐고, 유럽 대륙에서조차 농작물과 낙농제품이 방사능에 오염돼 초기 몇 주 동안은 반감기가 짧은 요오드131이 주로 우유와 잎 작물 등에서 발견됐으며 이후 수 개월간 반감기가 긴 세슘137이 작물과 토양의 표층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체르노빌원전 주변 32㎞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이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됐으며 최종적으로는 이는 남한 면적의 1.5배에 해당하는 지역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체르노빌은 지금

우크라이나정부는 사고 직후에 에너지 부족을 이유로 체르노빌원전 중 남아있는 3개의 원자로를 계속 운전하기도 했다. 그 뒤 1992년 2호기에 화재가 발생해 복구 불능이 됐고, 1호기는 우크라이나정부가 IAEA의 협력을 얻어 1996년에 폐쇄했으며, 2000년에 3호기를 운전정지시켜 체르노빌원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고가 난 체르노빌4호기는 석관 작업을 했으나 내용연수가 30년으로 노후화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현재 연간 4000kl 가량의 빗물이 석관 내부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원자로 내부를 통해 방사능이 주변 토양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석관 콘크리트나 철근이 계속 부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존의 석관 위에 새로운 안전차폐설비(NSC)를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건설비용이 7억6800만 달러(약 9천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위해 1997년 G7 정상회의에서 ‘체르노빌쉘터기금’이 설립되기도 했다.

사고발생 30년이 지난 우크라이나의 옛 체르노빌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엔 여전히 출입이 금지되고 원전 주변의 100여개 마을이 사라졌다. 그러나 2010년 12월부터 우크라이나정부는 필요시 체르노빌원전 부근의 출입을 허가했다. 발전소 부근의 방사선 수준이 낮아졌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키에프에서는 체르노빌원전 투어가 개최되고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된 이 일대는 야생동물의 보고가 되고 있다고 한다.

무나카나 요시야스(宗像良保)의 ‘후쿠시마가 본 체르노빌 26년째의 진실’이라는 책에는 ‘한번도 타 보지도 못한 관람차’가 나온다. 프리퍄치유원지에 세워진 이 관람차는 개원 5일 전에 체르노빌원전사고가 일어나 그대로 시간이 정지된 상태로 있다. 우크라이나의학아카데미 방사선의학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건강한 아동의 비율은 1992년 24.1%에서 2008년에는 5.8%로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판『우크라이나정부보고서』에 따르면 제2세대에 아이들의 건강 악화가 뚜렷해지고 만성질환을 가진 제2세대가 1992년 21.1%에서 2008년 78.2%로 증가했고, 내분비질환 11.61배, 근골격계 질환 5.34배, 소화기계 5.00배, 정신 및 행동 이상 3.83배, 소화기계 질환 3.75배, 비뇨기계 질환 3.60배 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체르노빌원전사고후 2008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6049명(사고 당시 0~18세)이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체르노빌원전사고로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고 때문에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약 60만 명이 사고 처리에 종사하게 되었고, 지금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방사능오염구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2. 후쿠시마원전사고의 발생, 대응 그리고 교훈

 

1) 후쿠시마원전사고의 발생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사고, 즉 후쿠시마원전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도호쿠지방 태평양연안 지진으로 인해 진도9의 지진과 쓰나미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중대사고이다. 체르노빌원전사고와 함께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의 최고 단계인 7단계(Major Accident)를 기록했다. 후쿠시마원전참사는 은폐·축소를 계속해온 일본 원자력행정의 ‘비밀주의’와 ‘안전신화’가 빚은 인재이다.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원전의 안전을 위해서 자동으로 원자로 1~3호기가 긴급정지됐다. 당시 4호기는 분해점검으로, 5․6호기는 정기검사로 발전정지중이었다. 원자로 주변의 송전선로와 변전시설 등이 지진으로 인해 쇼트되거나 무너져내리면서 외부전력이 차단됐다. 자동시스템에 의해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으나, 지진발생 약 50분 후 높이 13~15m의 쓰나미가 발전소를 덮치면서 지하에 설치된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침수되어 정지했고, 발전소 내의 모든 전기시설 역시 손상됐다. 쓰나미 이전에 이미 원자로 1호기 건물 내에서의 방사선량은 급증했다. 후쿠시마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 전력마저도 없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냉각수 펌프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냉각수가 급속히 증발하여 원자로 내부 온도 및 압력이 상승하게 되었다. 원자로 1~3호기는 모든 냉각수가 증발하면서 3월 12일 노심 온도가 1200℃까지 상승했다. 12일 1호기, 14일 3호기에서 수소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를 손상시켜서 방사능의 대기 유출이 시작됐다. 도쿄전력은 14일 원자로 냉각을 위한 해수주입을 시작했다. 2호기는 14일 오후 8시, 3호기는 13일 오후 9시에 노심 온도가 2800도까지 급상승하여 노심용융이 시작됐다. 이후 냉각수 유출 및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시작됐다. 4호기의 경우 15일에 수소폭발이 발생했으나, 이후 냉온정지 상태로 들어감에 따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이 사고로 인해 대기, 토양, 고인 물, 바다, 지하수에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畑村洋太郎外,2013).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체르노빌원전사고와도 달리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지진과 쓰나미로 일어난 복합재해로 인한 대형사고이다. 고베대 명예교수인 이시하라 가쓰히코가 경고를 했던 ‘원전지진재해’가 최초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사고를 일으킨 원자로의 수가 복수였다는 것이다. 스리마일섬원전사고나 체르노빌원전사고와는 달리 이번에 노심용융사고를 일으킨 원자로가 3개였다. 셋째, 사고의 수습에 매우 긴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원전사고의 경우도 사고후 약 2주만에 수습이 돼 7개월 후에는 석관으로봉쇄를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사고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났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넷째, 피해지역의 광역성이다. 방사능오염이 일본 각지로 확산됐는데 이 정도의 광역성을 가진 오염은 일본에서는 과거에 없었다. 다섯째, 오염의 불가역성이다. 지금까지 환경문제로 이처럼 주민 전원이 단기간에 도망치듯 피난해 장기간 되돌아갈 수 없는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 장기간에 생활환경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2) 후쿠시마원전사고의 대응

일본 정부사고조사위원회가 공표한 후쿠시마원전사고조사위원회의 ‘중간보고’ 및‘최종보고’의 요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지진․쓰나미라는 자연현상에 기인한 것이지만 초대형 사고가 되었던 배경에는 사전의 사고방지․방재 대책, 사고발생후 발전소에서의 현장대처, 발전소 밖에서의 피해확대 방지책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령 ①도쿄전력과 원자력안전․보안원 등이 사전에 중대사고대책이 미비했던 점, ②쓰나미 위험성을 과소평가해 쓰나미대책이 미비했던 점, ③원자력재해가 복합재해로서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점, ④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발전소 외부로 흩어져 날아갈 것을 예상한 방재대책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⑤사고발생 직후 도쿄전력의 현장대처가 서툴렀다는 점, ⑥정부와 지자체의 발전소 외부의 피해 확대방지 등에 결함이 있었던 점, ⑦정부의 위기관리태세에 약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쿄전력을 포함한 전력사업자나 국가도, 일본의 원전에서는 노심용융과 같은 심각한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탓에, 이러한 사고 가능성을 현실로 보지 않게 됐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원전사고 발생 이후 일본 정부와 자자체의 대응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첫째, 기능하지 않았던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에 기초한 긴급시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재법 자체가 JCO사고라는 국지적인 사고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법률로서 광역적이고 복합적인 원자력재해에 대한 대응을 상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작 사고 발생시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원전규제 관계기관이 모두 기능부전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원자력재해 발생시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할 원자력안전보안원이 후쿠시마원전사고 발생 후 긴급사태 대응에서 정보수집기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없었고 총리관저와 관계부처가 요구한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적절하게 제공할 수 없었다. 셋째, 정보제공·홍보에 문제점이 많았다. 당초 내각관방장관, 원자력안전보안원, 현지대책본부, 후쿠시마현, 도쿄전력 등 5자가 따로 하던 것을 사고 보름후에 정부와 도쿄전력의 홍보가 일원화되어 종합본부에서 언론 발표를 했으나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에 관한 정보제공을 신속·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다섯째, 피난구역 내에 남겨진 후타바병원 입원환자 등의 피난·구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입원환자에 대한 파악과 중환자에 대한 정보의 공유가 돼 있지 않아 중환자 20여명이 사망했다. 여섯째, 지자체에 의한 요오드제의 배포와 관련한 후쿠시마현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국가의 지시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지자체에 요오드제 회수 지시를 내린 현의 판단은 부적절했다.

 

3) 후쿠시마는 지금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지금도 후쿠시마원전의 원자로에서는 방사능물질이 공기중으로 계속 누출되고 있으며, 빗물과 원자로 밑을 흐르는 지하수에 의한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 바다로 계속 누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후쿠시마원전 일대뿐만 아니라 일본 동북부 전체의 방사능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후쿠시마원전에서는 매일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이 하루에 약 600억 Bq(베크렐)씩 태평양으로 방출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출되는 방사능 오염수에는 농도 기준만이 있을 뿐 총량기준이 없어서 방사능물질 농축 우려가 높은데도 도쿄전력 측은 방사능 오염수는 기준치 이하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러한 방사능 오염수는 2011년 당시 원전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 원전을 냉각시키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반경 20km 구역을 ‘경계구역’으로 지정해 주민의 출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당시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정부는 방사능 누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도쿄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서 유출된 세슘137이 15,000TBq(테라베크렐)로, 89TBq이었던 히로시마 원폭 리틀보이의 168.5배라고 밝혔다. 반면에 노르웨이 대기연구소는 세슘137이 36,000TBq 유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사고로 원전 반경 20km 이내 지역이 출입금지 상태이며 약 8만명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외지를 떠돌고 있고 일본 전역에 방사능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2015년 4월 현재 원자로내 연료의 거의 전량이 용해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후쿠시마원전사고를 직접원인으로 하는 사상자는 4호기 터빈건물 내에서 지진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가 2명, 지진에 의한 부상자 6명, 1,3호기 폭발로 인한 부상자 15명이며, 피폭 가능성은 100mSv를 초과한 종업원 30명, 제염을 실시한 주민이 88명 등 약 200명이라고 한다. 원전 관련사는 공식적으로는 789명이다. 한편 오쿠마정의 후타바병원에 입원중이던 인지증환자 21명이 운송중 또는 운송후에 사망했으며, 지진 직후 피난과 겹쳐 50명이 사망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에 앞선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인한 쓰나미로만 약 2만명의 사망 실종자가 발생했다.

또한 방사능 오염수 유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일본산 생선에 대한 방사능 검사 확대에도 불구하고 도미, 생태 등 수산물의 구매를 기피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수산물 방사능 기준치가 일본의 100Bq/Kg(유아는 50Bq/kg)보다 높은 370Bq/kg이어서 일본에 비해 3.7배 많은 방사능 오염물질을 가지고 있는 생선이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진전됨에 따라 더이상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을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11년 7월 향후 10년 사이에 20조엔(약 200조원)의 처리비용이 들 것이라는 시산 결과를 공표했다. 도쿄전력은 2012년 4월 사고배상에 필요한 총액을 2조5462억엔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제염비용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도쿄전력은 손해배상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원자력손해배상지원기구로부터 2011년 11월에 8900억엔, 2012년 2월에 6900억엔 등 합계 1조5800억엔의 추가지원 인정을 받았다.

 

 

4) 후쿠시마원전사고의 교훈

‘후쿠시마원전사고 정부조사위 보고서 핵심해설서’인 ‘안전신화의 붕괴(김해창 외, 2015)’라는 책 말미에는 정부조사위원장을 맡았던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후쿠시마원전사고에 배워야 할 사고대체의 7가지 마인드를 개인의견서로 첨부해놓았다.

첫째, 있을 법한 일은 일어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도쿄전력의 안전신화가 붕괴한 것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일본의 전기품질을 과신한 나머지 1993년 원전안전설계심사지침을 바꿔 장기간 교류동력 전원상실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도쿄원전이 장기간 전원상실을 예상한 준비, 훈련 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다가 대참사를 맞게 된 것이다. 둘째,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설치허가 신청 당시 쓰나미의 예정 높이는 당시 최고치인 칠레지진쓰나미에 준한 3.1m였고, 그후 6.1m로 높였다. 일본 역사에서 869년의 조간(貞觀)쓰나미의 경우 10m를 넘는 거대 쓰나미일 가능성이 지적되었지만, 지진학자들조차도 ‘후쿠시마 앞바다에서는 거대 지진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도쿄전력도 13m 이상의 대쓰나미가 올 확률이 0.1%라고 예측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다가 대참사를 당한 것이다. 셋째, 모든 것은 변하므로, 변화에 유연성있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그후 지진학의 발전으로 후쿠시마현의 태평양 연안 쓰나미 습격 가능성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가 늘었음에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았고, 스리마일섬원전사고나 체르노빌원전사고, 프랑스 브라이에원전의 홍수로 인한 전원상실사고 등에 대해서도 그것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매뉴얼에 집착해 일상적인 사고예방만 해왔던 것이다. 넷째, 가능한 한 모든 예상과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의 경우 사고 전 지진에 대한 예상과 준비는 상당히 잘 돼 있었지만 쓰나미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수밀문(水密門)을 설치하고, 비상발전기만 있었어도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인데 ‘원전 안전신화’에 도취해 원전사고의 발생을 전제로 한 피해줄이기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다섯째, 형식을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만들어놓은 구조의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당시 SPEEDI라는 방사능측정예측장비가 있어 어떤 방향으로 방사성물질이 날아가는지 예측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가 공표되지 않아 피난에 활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SPEEDI 운용자들이 이 시스템 구축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세월호의 VTS의 존재처럼 아무리 조직이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실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조직구조와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섯째, 위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험에 바로 맞서서 논의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원래 극히 위험한 것인데도 어느새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절대안전의 신화에 너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을 ‘나쁜 것’으로만 보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위험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어느 조직이든 내부고발자가 보호받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곱째,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타무라 정부조사위원장의 개인 경험으로 1999년 일본의 JCO 임계사고 조사차 일본에 와서 일본 기술자들을 인터뷰한 미국정부 조사단원에게 들은 얘기로 일본 원전기술자 가운데 한사람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술자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외부를 향해서 발언가능한 정부가 아니면, 원자력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미국 기술자가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원전 기술자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매사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가능한 개인을 길러내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일본 국내에서 발생한 원자력 트러블 중 가장 심각한 것은 1999년 도카이촌에서 발생한 JCO핵연료 가공시설의 임계사고(즉사량 피폭으로 종업원 2명 사망)이며, 다음으로 1997년의 옛 도넨(動燃)의 도카이사업소 아스팔트 고화처리시설의 화재폭발사고(종업원 37명 피폭)였다. 이들은 전자가 레벨4, 후자가 레벨3으로 평가되었던 트러블이었지만 모두 원자력 관련시설에서 발생한 것으로 원전 자체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원전은 그때까지만 해도 레벨2 이하의 트러블밖에 발생하지 않았고, 대량의 방사성물질 방출 사고는 전무했다. 스리마일섬사고와 체르노빌사고는 원전에서 설계기준을 넘는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레벨3 이상의 원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안주해 중대사고에 대한 현실감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체르노빌원전사고를 보고도 일본 원전 당국은 남의 일로 봤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우리나라 원전 당국과 기술자들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후쿠시마원전사고에서 배워야 할 것은 ‘원전 안전신화’에서 깨어나 실질적인 사고 가능성을 예상하고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3. 우리나라 원전․에너지정책의 문제점

 

1)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끝없는 원전증설 정책 추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참사가 발생했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는 늘어나는 에너지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원전비중 확대계획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후쿠시마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정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2012년 5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원전 확대정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의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에 따르면 당시 운영중인 21기의 원전 외에 19기를 더 건설해 2030년에는 총 40기의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며,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량을 30%에서 41%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2012년 12월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야당후보이던 문재인 후보는 추가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 된 원전은 즉각 가동을 중지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여당이던 박근혜 후보는 원전가동중단문제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고, 원전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박근혜정부의 원전에 대한 인식은 이명박 전 정부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월 2035년까지의 에너지정책 비전을 담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3~2035)’을 확정했는데 원전 7기를 추가로 건설해 원전 비중을 29%로 결정했다. 비중은 낮아 보이지만 에너지증가률 예측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아 결과적으로 추가 원전 건설 추진은 이명박 정부와 사실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25개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지역별로는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4기),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3기),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4기), 신월성원전(2기), 경북 울진군 한울원전(6기),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6기)이 있다. 이와 함께 원안위는 2016년 6월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를 여야 추천위원 7:2로 승인해줬다. 우리나라는 2009년 12월 사상 처음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한 이후 각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 ‘원전 수출 강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원전 신규 건설계획을 잇달아 중단하면서 2009년 이후 5년간 추가 수주는 멈춘 상태다.

한편 정부는 2014년 10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켜 2014년 연말까지 사용후핵연료처분 권고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활동기간을 4개월 연장했다. 그러나 그간 형식적인 토론회 개최 이상의 진전은 없으며 게다가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시민환경단체 대표 2명이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퇴했고, 지역주민의 의견수렴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 일상화된 원전 관련 부정부패 사고은폐

원전의 안전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원전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2012년 3월에 밝혀진 고리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은 원전 지역 주민들은 물론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2012년 2월 9일 고리1호기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발전소에 직원의 부주의와 비상발전기의 결함 등으로 모든 전력공급이 12분간 중단되는 아찔한 사고로 원자로 냉각수의 온도가 36.9℃에서 58.3℃까지 상승하는 등 후쿠시마원전사고 초기단계와 흡사한 발전소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정전사고 자체도 문제이지만 귀 밝은 지역 시의원이 없었다면 이러한 사실이 감쪽같이 묻혔을 것이라는 점에서 원전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극에 달했다. 그것은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의 조직적 은폐기도, 한수원 사장의 상부 보고 지체, 원자력안전위원회 주재관의 감독부실 등 ‘원자력행정’의 무책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전 은폐 및 비공개 사례는 아주 많다. 1984년과 1988년에 월성1호기 냉각수 누출사고가 있었음에도 1988년 국정감사 때까지 은폐됐다. 1995년 월성1호기 의 경우 방사성물질 누출사고가 1년 뒤에 보도됐다. 1996년 영광2호기에서 냉각재가 누출됐으나 몇주 뒤 주변환경을 오염시킨 뒤에야 알려졌다. 2002년에는 울진4호기에서 증기발생기 관 절단으로 인한 냉각수 누출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단순 누설사고로 축소 은폐했다. 2003년 부안을 핵폐기장으로 정하기로 한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후보부지 예비조사보고서’를 한 달간 미공개 하다가 TV 공개토론회에서 지적을 받은 뒤 공개했다. 2004년 영광 5호기에서는 방사성물질 누출이 감지되었으나 재가동을 강행했고 일주일간 은폐했다. 2007년 대전 원자력연구소에서 핵물질 3kg이 들어있는 우라늄 시료박스가 소각장으로 유출된 사건이 3개월이나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지만 분실된 우라늄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당시, 부지조사 보고서가 4년간 은폐됐다. 2007년 12월 고리1호기 수명연장 허가 당시 안전조사 보고서 공개가 거부됐다. 2012년 11월 고리4호기 화재 때 화재경보기가 고장났으나 이를 은폐,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도 거짓 보고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원전의 부정부패가 대형원전 참사의 뿌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실제로 도쿄전력에 의한 사고은폐 사례는 다반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2년 8월 29일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제너럴일렉트릭 소속 검사원의 고발에 따라 조사를 실시한 결과 도쿄전력의 원전 정기검사기록에 부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그간 무려 26건의 부정리스트가 제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 원전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드러났다. 2012년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신월성1․2호기와 신고리1~4호기의 안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부품인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 관련 자료들이 위조됐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원전안전에 대한 신뢰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동안의 부품관련 비리유형은 돈받고 납품, 중고품 납품, 짝퉁부품 납품, 훔친 후 재납품, 품질보증서 위조납품 등이 있었는데 이제는 시험성적서를 발행하는 시험검증기관이 스스로 관련 자료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급기야 2013년 7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주) 김종신 사장이 원전부품 납품업체 대표로부터 1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2007년부터 약 5년간 그의 재임기간중에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믿고 신고리1·2호기 등에 ‘JS전선(電線)’의 불량부품을 납품받는 등 대부분의 ‘한수원 비리’가 일어났다. 원안위는 고리4호기와 한빛2호기가 각각 앞서 만들어진 고리3호기와 한빛1호기의 설계도로 용접점검부위를 검사해 안전점검대상인 17개 부분 중 2개 부분을 30년간 점검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핵심 원전 기기의 안전점검이 30년 동안 엉터리로 진행해 왔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부정부패 사고은폐에는 소위 ‘핵마피아’ 또는 ‘관(官)피아’의 존재가 있다는 지적도 높다. 동아일보(2014.5.12)에 따르면 정부중앙 부처에서 고위 간부로 재직하다 산하 공공기관이나 관련 협회 등에 취업해 활동 중인 ‘관피아’는 모두 384명으로 집계된다고 보도했다. 이중 2013년 9월 취임한 조석 한수원 사장은 원전의 감독기관인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의 ‘관피아’로 지목되고 있다.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에 일본에선 원전기술자들이 원전에 대한 참회록를 내놓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원전과 40년간 공생해온 GE기술자이자 도호쿠엔트프라이즈회장인 나카 유키테루씨가 2014년 3월에 내놓은 ‘후쿠시마원전 어느 기술자의 증언-원전은 개도국의 기술이었다’라는 책이다. 또 하나는 일본원자력사업(주)에 근무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 건설에 원자로계 펌프 열교환기 등 기구 구입기술을 맡았으며 2002년 퇴직한 원전기술자 오구라 시로 씨가 2014년 6월에 내놓은 ‘전 원전기술자가 알리고 싶은 진정한 두려움’이란 책이다. 이 책에서 오구라씨는 ‘원전은 정말 기도 안 차는 괴물이다. 이처럼 복잡기묘한 원전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엔지니어는 이 세상에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35년간 현장에서 원전개발을 계속해왔던 이 책을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속죄하는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

 

 

4. 탈핵으로 가는 길

 

1) 원전 반대 주민운동의 확산

정부의 원전증설 계획에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거세지고 있다. 삼척, 영덕지역의 원전 반대 주민투표 실시, 고리원전의 갑상선암 집단소송,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 신고리5․6호기 백지화 투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첫째, 원전 반대 주민투표 실시 사례로 후쿠시마참사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자체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원전유치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지자체가 등장했다. 강원도 삼척시는 2014년 김양호 시장 주도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투표율 67.94%(2만9000여 명)에 반대 84.97%의 결과를 냈다. 경북 영덕군에서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벌여 주민 1만1209명 참여한 가운데 91.7%가 반대표를 던졌다.

둘째, 고리원전의 갑상선암 집단소송 사례이다. 이는 원전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갑상선암 발병 주민들과 그 가족들이 2014년 12월 16일 한수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한국 최초로 원전 인근 주민의 암에 대해 원전의 책임을 인정한 이른바 ‘균도 소송’ 판결에 따른 것이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갑상선암 피해 주민은 모두 301명으로 모두 원전 인근 10km에서 5년 이상 거주하거나 근무한 사람 등 총 원고인단 수는 1336명에 이른다. 지역별로 보면 고리원전이 191명으로 가장 많고 월성원전 46명, 영광원전 34명, 울진원전 30명 등이다. 이들 중 95.5%가 최근 10년 안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환경운동연합 등 8개 단체는 2014년 12월 1차 공동소송 원고인단 298명을 모집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 소장을 제출했고, 2차 소송인단도 2015 1월 말까지 247명을 모집했다. 현재 갑상선암 발병자 총 545명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1심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셋째,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의 성과 그리고 신고리5․6호기 건설 백지화운동 돌입 사례를 들 수 있다. 지난 1978년 상업가동에 들어간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연한 30년을 넘기고 2007년 10년 수명연장에 들어간 이래 정부와 한수원은 또 다시 10년을 연장하려는 계획에 부산시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이다. 2015년 6월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 신청기한을 앞두고 2015년 2월에 부산지역의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약 120개 시민단체가 뭉쳐서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결국 2015년 6월 정부로부터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1년 뒤인 2016년 6월 원안위가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 승인을 하자 이에 반대해 부울경지역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신고리5․6호기 백지화 투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2) 대안은 있다-탈원전에너지전환, 에너지지방분권 절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은 이제 사양산업이고 선진국은 대안에너지에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에너지수요를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서 이처럼 위험하고 결코 값싸지 않는 원전을 계속 짓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증가율은 2010년부터 2035년 사이에 연평균 1.2%이고, OECD국가는 0%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평균을 쳐도 2035년까지 약 30~40% 증가로 보면 충분한데 이것의 배가 되는 80%로 잡아서 2015년 현재 23기 원전에 계획중인 것 11기, 거기에다 7기를 더 지어 2035년에는 모두 41기의 원전을 가동시키겠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다. 이야말로 세계의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이다. 반면에 전세계의 대체에너지 투자비율이 평균 20%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2~3% 정도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그것도 폐열에너지를 빼면 1% 밖에 안 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원전르네상스’니 하면서 수출드라이브정책에 올인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심해졌고, 박근혜정부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게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에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이 좋은 사례이다. 서울시는 2012년 4월 26일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대책‘을 발표해 2014년까지 에너지 200만 TOE(원전 1기 수요 대체량)를 절감하기 위해 햇빛도시 건설과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신축건물 에너지총량제 도입 등을 담은 '원전하나줄이기 종합대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공공청사, 학교, 주택, 업무용 건물 등 1만여 공공·민간 건물의 옥상과 지붕에 290MW의 태양광발전소인 '햇빛발전소' 설치를 추진해 설치시 설치비의 30% 범위 내에서 연리 2.5%로 장기 융자 지원해왔다. 2014년 10월에는 후속조치로 ’원전하나 줄이기 시즌 2’대책을 발표했다.

탈핵에너지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현재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소비의 6%,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은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전환시대의 논리 탈핵(2011,이매진)’이란 책 가운데 ‘한국 사회의 탈핵 시나리오를 생각한다’는 글에서 ‘핵발전 안 하고도 사는 법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대안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정부의 에너지예측에 정확성을 기하고, 에너지절약형 생산 소비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에너지환경미래공동연구소(JISEEF)의 2004년 연구에서 한국이 비용효과적인 에너지 효율성 증진방안을 통해 핵발전소를 증설하지 않고도 국가경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대안이 가능하다는 점을 몇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하면서 제시한 바 있다. 이 시나리오의 결론은 한국의 경우 신규 핵발전소 증설 없이도 장래 예측된 에너지수요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도 상당히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LNG발전 확대가 과도기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둘째, 대기업에 원가이하로 공급되고 있는 왜곡된 산업용 전기요금의 합리적인 인상을 통한 전기생산성을 높이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홍준희 교수,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 교수가 2013년 11월 11일 제2회 부산비전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기업용 전기요금의 과감한 정상화를!’이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정부가 산업체 전기요금을 매년 10% 씩 5년간 지속적 인상 선언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전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쓴다면 원전입지 지역 반값전기료는 물론 장기적으로 원전입지 지역의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셋째, 대안에너지의 보급을 위해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되살리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지역의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발전 등을 시민 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2002년에 도입했던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in Tariff)'보다 후퇴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소규모 햋빛발전소와 관련해 발전차액지원제도의 경우 햇빛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한전이 항상 기준가격으로 구매해주는데 비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에서는 한전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으로 제한된 양만 구입하면 되기에 설치비 단가가 높은 소규모 햇빛발전소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에 햇빛발전의 확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보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분산형발전, 즉 ‘동네에너지’의 특성과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존 번 교수는 서울의 건축물 지붕만 잘 활용해도 태양광으로 서울 전체 에너지의 30% 정도를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에너지소비가 집중되고, 멀리 떨어진 핵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동안 손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도권의 지역재생 에너지 보급은 핵발전의 필요성을 더욱 줄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에너지의 지역자산화가 가능하도록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한 도농복합지역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영농’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자원절약과 더불어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구축이라는 사실이다.

넷째, 지자체가 에너지분권에 앞장서서 지역 특성에 맞는 재생가능에너지원 개발 및 투자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에너지 공급에 관해서는 중앙정부에게 권한이 주어지고 지방정부는 지역에너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독일의 경우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자급을 지향하는 지역이 현재 500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화하고 민관거버넌스체제를 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공급자 중심의 기업 가치와는 달리 사회공헌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사회시스템 만들기에 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에너지 절감 및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운수 에너지 산업 차원의 에너지 절감 노력과 함께 소비 부문에서의 현명한 선택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정에서도 에너지절약, 자원절약 등 생활행동 변화를 위해 효율 좋은 에너지 소비 기기를 선택 보급하게 하고, 가정에서의 에너지절약 및 실천도를 자가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에 대한 정책적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 위험한 핵발전 외에는 대안이 없는 사회를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주인되어 재생가능에너지를 만드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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